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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없는 관용은 정의가 아닙니다_정청래
정의는
책상위에서가
아니라
가정에서
거리에서
마을에서
공장에서
밥상위에서
살아
숨쉬고
있고
또
살아
숨쉬어야
합니다.
관성적으로
반대하고
관성적으로
화해하는
정치문화는
오히려
서로를
더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친일청산이
있었다면
불신이 설 자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내란의
확실한
청산만이
진심으로
화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입니다.
국민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고
이재명
정부가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죄를
벌하지
않는다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프랑스
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역시
적어도
내란과
외한
만큼은
무관용 원칙으로
앞으로
일관해야
할
것입니다.
正義는
책상위에서가
아니라
家庭에서
거리에서
마을에서
工場에서
밥상위에서
살아
숨쉬고
있고
또
살아
숨쉬어야
합니다.
慣性的으로
反對하고
慣性的으로
和解하는
政治文化는
오히려
서로를
더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親日淸算이
있었다면
不信이 설 자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內亂의
확실한
淸算만이
진심으로
和解할
수
있는
根據가
될
것입니다.
國民들이
政治圈에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고
이재명
政府가
반드시
成功해야
하는
理由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罪를
罰하지
않는다면
내일의
犯罪에
勇氣를
주는
것이다.
프랑스
共和國은
寬容으로
建設되지
않는다.
大韓民國
역시
적어도
內亂과
外患
만큼은
無寬容 原則으로
앞으로
一貫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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